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김승유 하나은행 대표에 대해 검찰이 지난해 12월 29일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 사건은 하나은행 노동조합이 진정해 2004년 10월 서울지방노동청에서 “성차별이 인정”되었고, 피진정인(김승유 하나은행 대표)에게 “성차별적인 인사제도에 대해 시정이 지시”된 바 있다.
이후 피진정인의 시정 결과가 제출되지 않아 2005년 1월, 서울지방노동청에 의해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으로 고발된 사건이다. 이 사건은 그간 은행을 비롯한 금융증권업의 간접차별 논란을 불러온 직군제에 대해 노동부가 사법처리한 사건으로 많은 사회적 관심을 끌었다.
검찰, 수사 내용 구체적 언급 없어
지난해 12월 11일 증권노조가 개최한 토론회에서 김진(법률사무소 이안) 변호사는 하나은행 직군차별 사례를 언급하며 “단순히 차별의 혐의를 인정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남녀고용평등법의 각 금지 조항들을 구체적으로 적시해, 하나은행 인사제도의 어떠한 부분이 어떠한 이유로 위법한지를 항목별로 나누어 설명하는 이른바 ‘간접차별’ 개념을 적용한 거의 유일한 유권해석이라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고 발표했다.
1999년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시 “사업주가 여성 또는 남성 어느 한 성이 충족하기 현저히 어려운 인사에 관한 기준이나 조건을 적용하는 것도 차별로 본다”는 ‘간접차별’ 규정이 신설된 후, 노동부가 간접차별 규정을 적용하여 처음으로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으로 보고, 처음으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런 이유로 특히 금융업계의 간접차별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노동조합에서는 검찰수사 결과에 대해 적잖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29일, 검찰은 수사 내용에 대해선 구체적인 언급을 피한 채 ‘김승유 하나은행 대표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고 언론을 통해 밝혔다. 검찰이 1년 동안이나 조사를 끌다가 ‘성차별 혐의가 없다’고 밝힌 시점은 하나은행 노동조합은 선거를 치뤄 집행부가 교체된 때였다. 이로 인해 진정인이었던 노조가 앞으로 이에 어떻게 대응할 계획인지는 현재로선 불투명한 상황이다.
노동부, “남여 분리 모집, 성차별에 해당”
서울지방노동청 한 관계자는 “검찰로부터 단지 ‘무혐의’라는 통보만 받았을뿐, 검찰이 어떤 구체적인 근거로 위반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는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지방노동청은 고발 당시 ‘모집단계에서부터 직군에 의한 성차별’, ‘동일한 업무에 대한 임금 차별’, ‘배치와 승진에서 차별’ 등에 대해서 진정인과 피진정인의 주장을 각각 조사해 ‘남녀고용평등법’상 위법 사항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당시 하나은행 측은 이런 차별 내용에 대해 “종합직, 일반직, 사무직군으로 대별되는 직군제를 폐지했고, 직종 및 직렬은 직무 특성에 따라 구분되는 것으로 직무별 상대가치 기준으로 임금이 산정되고, 직무 수행능력 여부에 따라 승진이 이뤄진다”고 반박하며 “남녀 차별적 요소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울지방노동청 고용평등위원회는 조사 결과 “채용, 배치, 승진경로가 서로 틀리는 직군제가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종합직(가계금융, 기업금융)에 비해 저임금, 하위업무 배치, 승진차별 등 처우가 좋지 못한 FM/CL 직군(전문텔러) 행원은 여성이 97.7%로 나타났고, 종합직 여성은 6.7%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FM/CL 직군은 대부분 여성이고, FM/CL 직군을 제외한 분야(종합직)는 대부분 남성들이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이미 사원 모집 공고문에서 종합직 채용시 “채용조건에 군필 또는 면제자를 명시”하고, FM/CL(전문텔러) 행원 모집시에는 “군경력 관련 문구는 미명시”하여 “결과적으로 전문텔러는 100% 여성만이 채용한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에 대해 서울지방노동청은 “남여를 분리 모집한 것”이라며 성차별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또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지급’ 조항에 의해 “두 업무가 다소 다르더라도 직무평가 등의 방법에 의해 본질적으로 동일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노동”에 대해 동일한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임금상 차별이 나는 부분에 대해 하나은행 측은 외부전문가에 의해 FM/CL(전문텔러) 행원의 직무평가를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울지방노동청은 “직무평가가 객관적으로 이뤄졌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차별 형태에 어떻게 대응하나?
노동부가 하나은행의 “성차별적 인사제도”와 간접차별 내용에 대해 조목조목 자세히 밝혀놓은 반면, 검찰은 ‘성차별적 요소가 없다’고 결정한 근거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있다.
노동계에서는 “남녀고용평등법 제정 이후 노골적으로 드러난 직접적인 성차별은 많이 사라졌지만, 특정성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는 새로운 형태의 차별이 다양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채용과 고용, 급여와 승진상의 간접 성차별의 금지조항의 법제화와 시행은 노동시장의 남녀차별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적 노력은 이미 세계적 추세가 되어가고 있다. 노동시장 내에서 새로운 형태의 차별에 대응하기 위해 신설된 ‘간접 차별’ 규정을 적용하여 차별을 시정하고, 차별 행위를 규제해야 할 검찰이 자세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채 고용평등법 위반 의혹이 뚜렷한 기업주에 대해 ‘무혐의’ 처리한 것은 차별을 시정하려는 사회적 노력에 반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