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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 사가다 동굴탐험기

K히메 2012. 4. 8. 14:36

여행 장소: 필리핀 바나웨 사가다

여행 기간: 2012 2 27~37(10일간)

동 행 자 : 마닐라에서 유학 중인 후배

 

 이제는 너무 익숙하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필리핀으로 날아가 입국 수속을 밟는 절차까지.매쾌한 느낌의 축축한 공기. 심지어 공기 마저도 익숙하다. 짐만 아니었으면 동후에게 나오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충분한 택시비를 페소로 가지고 있기에.

 

  6개월만의 다시 방필이다. 2010년부터 6개월에 한번씩은 꼭 오게 된 필리핀. 처음부터 다시 올 생각은 아니었다. 나도 이제 나만의 사정이 있으니 한가하게 놀 때만은 아니다. 그런데 한번쯤 더 와 볼만한 이유가 생겼다. 아니 좋은 핑계거리가 생긴 것이 정확하다. 선배의 소개로 올해 열리는 필리핀 관광청 소속으로 여수엑스포 필리핀관의 가이드로 참여하게 되면서 나름의 필리핀 경험 소개와 여행지 소개를 해야 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새로운 여행과 경험이라는 아주 좋은 핑계를 가지고 필리핀으로 다시 왔다.

 

 이번 필리핀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은 사가다(Sarada) 여행이다. 사가다. 필리핀을 여러 번 가본 사람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지명일 것이다. 필리핀 여행 하면은 해변이 먼저 떠오를 것이니 모를 만도 하다. 1년 전 다이빙 자격증을 따면서 해변도 이제 질려버렸다고나 할까. 그 때 쯔음, 동후가 보여준 한 장의 사진이 있다. 계단식 논. 영어로 Rice Terrace. 정확히 사가다라는 곳에 있는 것은 아니고 바나웨(Banaue)라는 곳에 있다. 이 한 장의 사진은 나를 필리핀으로 부르는 듯 하였다.

 

  필리핀 도착 후 23일간은 다이빙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자격증을 따고 나서 6개월에 한번은 꼭 와서 다이빙을 즐기는 것 같다. 물속의 편안함. 그게 좋은 것 같다. 행동이 불편하지만 뭔가 날고 있는 듯 한 자유로운 느낌. 또 매번 다이빙마다 같은 곳이지만 다른 느낌이 있기에.

 

 2 3일의 다이빙 여행 후 마닐라로 돌아왔다. 바로 기대하고 있던 사가다 여행을 가기 위해서.

 

사가다로 가는 방법을 설명하면 대략 이렇다. 저녁 8시경에 있는 바나웨 행 버스를 타고 마닐라에서 출발, 10~12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바나웨라는 곳에 도착한다. 그 후 2시간가량 지프니를 이용하여 본톡(Bontoc)으로 이동, 이곳에서 한시간 가량 다시 지프니로 이동하면 있는 곳이 사가다이다.

 위의 방법은 마닐라에서 가는 방법이고, 바기오에서는 사가다로 바로 가는 버스가 있다고 한다.

 

 12시간의 여행. 참으로 긴 시간이다. 그것도 버스로. 소변을 잘 참지 못하는 나로서는 엄청나게 걱정되는 여행이다. 소변을 줄이기 위해서 출발 하루 전부터 수분 섭취를 자제하는 행동까지 했다. 보통 여행을 하기 전에는 설레임이 긴장감을 앞서기 마련이다. 나 역시 그러한 사람이나 이번에는 화장실 걱정으로 긴장감이 설레임을 눌러버렸다. 4시간 거리의 목포에서 서울까지 버스에서도 휴게소 한번을 가고도 화장실 때문에 버스를 세운 경력이 있는 사람이니.

 

 그래도 사가다가 이번 여행의 메인코스 아닌가. 난 이미 버스에 올라타있고 무사히 가기만을 바라는 수밖에. 버스를 타기 전 두번이나 화장실을 다녀왔고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기도했다. 제발 화장실이 급해지는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게 해달라고.

 

 버스 안에는 제법? 아니다 전부 외국인이다. 벌써부터 가보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전부 다 외국인이어서가 아니다. 나와 동후 둘만이 동양인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를 두가지 정도로 생각된다. 첫번째, 필리핀에서 한국인이 없는 곳이란 찾기 힘들다. 하지만 이곳은 산 아닌가. 다른 한국사람들이 해변에 갈 때, 우리는 산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두번째, 미국이나 유럽쪽 사람들은 계단식 논이 익숙치 않기 때문이다. 보통 평지에서 대규모 농작을 하는 서양인들은 오밀조밀하게 산을 깎아 만든 계단식 논이 신기할 것이다. 그렇기에 세계문화유산이 되었고 서양인들이 많지 않나 생각을 해본다.

 

 마닐라에서 바나웨까지 10~12시간정도 걸린다는 말에 오해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꽤 먼거리라고. 하지만 전혀 멀지 않다. 마닐라에서 400KM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다. 한국에서 저 거리면은서울에서 부산 가는 거리, 버스로도 5시간이 채 안되는 거리가 두배의 시간이 걸리는 것이 바나웨 가는 길이다.

 버스를 타고 가기 전에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그런 시간이 걸리는 것인지. 하지만 출발하고 1시간이 지나 이해할 수 있었다. 1시간 가량만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국도를 타고 계속 진행하는 것이다. 국도에 도로사정이 좋지 않은 필리핀이라. 그럴수도 있겠구나 충분히 이해가 간다. 더군다나 바나웨는 해발 1500M가 넘는 곳에 위치해있다. 이러한 도로에서 저 정도 높이를 버스로 이동하니 그럴 만도 하다.

 

 새벽 5시쯤 되었을까. 버스가 멈춘다. 다행히도 화장실이 가고 싶어지기 전에 잠이 들었고, 깨어보니 이곳 휴게소이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숨이 막힌다. 담배마저 잘 빨리지 않는다. 확실히 높은 곳으로 올라왔다는게 느껴진다.

 

 사가다를 가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긴 옷. 사가다 뿐만 아니라 본톡, 바나웨에서도 필요한 것이 긴팔이다. 이번 여행을 오면서 동후를 위해 패딩을 준비해왔다. 필리핀에서 무슨 패딩이냐고 할지 모르겟지만 필리핀에서 추위라는 것을 느낄 수 잇는 곳이 이곳 지역이다.

 

  3시간가량 더 버스를 타고 이동 후, 바나웨에 도착했다. 진짜 춥다. 한국이 겨울이여서 얼마 춥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준비해온 긴팔을 입고야 말았다. 재빠르게 일요일날 오는 버스를 예약. 버스는 하루에 한대가 있기 때문에 재빨리 예약해야하는 센스가 필요하다. 우리가 갔을 때에도 일요일 버스는 자리가 5자리밖에 남아있지 않은 상태이었다. 만약 누군가가 우리보다 먼저 내려 예약을 했다면 동후는 월요일에 학교를 못갔으리라.

 

 

 도착 시간 7 30분경, 아침을 먹으러 이동. 식당으로 이동하자 식당 테라스 밖으로 계단식 논이 보이기 시작한다. 입에서 감탄이 절로 흘러나온다. 20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이 곳. 산에서 사는 사람들이 생존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지고, 또한 현재도 이 곳 사람들의 식량의 주 공급원이 되는 곳이다. 이 곳의 논두렁의 길이를 다 합치면 22,400KM, 지구 반바퀴에 해당한다고 한다. 논 또한 일정한 크기가 아니라 1평에서 30평까지 다양한 크기로 이루어 져 있다고 한다. 정말 인류의 위대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중국에서 만리장성의 길이를 보고 놀랜 것보다 더한 놀라움이다. 2000년 전 이푸가오(Ifugao)족이 정착한 이래 생겼다고 추청하는 이곳은 지형의 특성상 어떠한 가축이나 도구의 도움 없이 만들어져 있다고 보고 있다. 정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곳이다. 사람의 손으로 이러한 것을 만들었다는 것이. 더군다나 이것이야 말로 진정 생존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 곳 역시 개발에서 자유로운 곳은 아닌가 보다. 아직은 많은 계단식 논이 유지되고는 있지만, 도로, 마을 등의 건설로 인해 많은 부분들의 논이 유실되었다고 한다. 도로와 마을이 들어서면서 이 곳 사람들의 생활은 좀 더 나아졌을지 몰라도 이러한 유산이 사라진다는 것이 가슴아프다.

 

 간단히 아침을 먹은 후, 본톡으로 떠나기 전 뷰 포인트에 들렸다. 이러한 멋진 곳을 그냥 지나치면은 실례가 아니겠는가. 더 이상의 말보다는 사진을 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이 곳을 만든 이푸가오족의 모습이다.

 

 

 

 

 뷰포인트를 보고 난 후 지프니로 본톡으로 향했다. 본톡에서 역시 다시 지프니를 갈아타고 사가다로. 지프니를 타고 산길을 이동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필리핀에서 지프니를 타본 사람은 알겠지만 오픈되어있는 실내 때문에 어마어마한 먼지를 들이마셔야 하고 벼랑 같은 길을 지나야 한다. 하지만 지프니 정말 재밌다. 지프니는 필리핀 사람들과의 생활과 가장 밀접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앙과 천장에는 짐이 가득 실려있고, 엄마 품에 안긴 아이들, 휴게소에서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아저씨. 지프니를 타면은 필리핀 사람들의 생활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바웨이 가는 길에서 잠깐 커피 한 잔의 휴식을 즐기며,,,,,

바나웨에서 2시간, 본톡에서 1시간가량을 달려 사가다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2시가 넘고 있다. 사가다에 가장 먼저 도착하면은 해야 하는 것이 있다. 숙소잡기? 관광? 아니다. 관광객 명부에 등록을 해야한다.

 

 이 곳에서는 산세가 험하고 동굴이 위험하다 보니 관광객이 목숨을 잃는 일이 간혹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연락처를 남기는게 필수라고 한다.

  

 

 

숙소를 잡으며 돌아다니다 보니 마을의 대략적인 구조를 알 것 같다. 인포메이션센터가 있는 마을 입구부터 큰 길이 쭈욱 있고 그 주변으로 상점이 위치해 있다. 마을은 대체로 소박한 모습이다. 이 곳에서는 공해라고는 자동차 소음밖에 없다. 멀리로는 계단식 논이 보이고 가까이는 소나무가 보이는(필리핀에서 몇 안되게 소나무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 사는 것은 그 자체가 축복이라고 하고 싶다. 조용히 휴양하고 싶다면 이곳을 찾으라.

 

관광객 명부를 작성하고 숙소를 잡았다

 

 

 

 

 숙소에 짐을 풀고 간단히 식사를 하러 나왔다. 아니 간단하지 않았다. 거창하지도 않지만 식사에 요거트까지 챙겨먹었다. 요거트를 챙겨먹은 이유. 유명한 곳이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사가다를 온 독일인이 이곳의 경치에 흠뻑 빠져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고, 그 독일인이 만든 가게가 이곳에 있다.

 

 가게 입구

 

 이름부터 요거트 하우스로 누가봐도 요거트가 유명한 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뭐 맛있는지는 잘 모르겟지만아무튼 3대에 걸쳐서 이어져 오는 가게라고 한다.

 

 점심을 먹는 동안 우리 가이드가 식당에 도착했고 가이드를 따라 동굴로 이동했다.

 아직 이곳에 온 이유는 설명하지 않은 것 같다. 이곳의 가장 유명한 곳은 동굴이다. 사실 왜 유명한지는 나도 아직 모르겠다. 그저 난 계단식 논을 보러 왔고, 목적을 달성했고 그냥 유명하다기에 가보는 것일 뿐.

투어 신청은 위에서 말했던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신청을 하면 된다. 하루 코스로 갈 수 있는 곳은 두 가지가 있는데, 루미앙(Lumiang) 동굴만 탐험하는 것과 수마깅(Sumaging) 동굴로 들어가 루미앙 동굴로 나오는 코스가 있다. 루미앙 동굴만 들어가는 코스는 쉬운 코스이고 두 동굴을 모두 탐험하는 것은 어려운 코스라고 한다. 이왕 온 거 다 해보자는 정신으로 어려운 코스를 선택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것이 고생의 시작일지는 상상도 못했다.

 

동굴에 가는 길에 볼 수 있는 것이 있다. Hanging Coffins. 매달려 있는 관. 정말 말 그대로 관이 공중에 매달려 있다. 이곳의 전통적인 장례방법이라고 한다. 사람이 죽으면 관에 넣고 석회암 절벽에 관을 매달아 매장하는 이들의 독특한 관습이라고 한다.

 

마을에서 30분 정도 걸었을까. 동굴입구가 보인다. 동굴 입구 역시 관이 쌓여 있다. 우리 가이드는 이곳은 신성한 장소이니 조용히 하라고 한다. 그리고 잠시 기도를 올린다.

 

동굴 안내 해준 가이드

 

 

 

동굴 입구에 쌓여져 있는 관.

 

그리고 동굴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 작업을 한다. 그것은 바로 렌턴에 불을 붙이는 것. 이곳에서는 동굴 탐험 때 편한 전기 렌턴을 쓰는 것이 아닌 석유렌턴을 사용한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왠지 옛 향수가 느껴진다. 아마 이것을 노린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언제 이런 석유 렌턴을 써보며 동굴을 들어가 보겠는가.

 

렌턴에 불 붙이는 중

 

 불이 붙고 동굴로 출발했다. 우리나라의 동굴을 다녀와본 사람이라면 동굴은 그냥 편히 걸어 들어갔다가 걸어 나오는 그런 동굴을 상상할 것이다. 어려운 코스를 선택했다고 해도 지가 어려워 봤자지 하는 생각이었다. 근데 이 동굴은 내가 생각하는 동굴의 개념(관광용 동굴)의 개념을 완전히 깨 부셨다. 바위 사이로 기어 들어가고, 기어 내려가다가 배가 바위 사이에 걸리고, 까마득한 절벽 아래를 줄 하나에 의지한 채 건너가야 하는 그야말로 극기훈련중의 극기훈련이었다. 심지어 줄에 잘못 매달려 팔이 빠지는 아찔한 사고도 경험했다. 그야말로 줄에서 미끄러지면은 나는 죽는 그런 상황까지도 벌어진 것이다. 지금이야 웃으며 누군가에게 이야기 하지만 정말 삶의 기로에 놓여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런 동굴을 나는 선글라스를 쓰고 들어갔으니 살아 돌아온게 용하다고 할 수밖에.

솔직히 동굴 안에서 어떻게 살아 돌아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렌턴 하나에 의지하고 간다는 것. 어둠 속에서 빛을 본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와 닫는다. 그렇게 화장실을 잘 가던 사람이 5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소변 한번 안보는 그런 긴장감이 이어졌다.

 

 

 

 

잠깐씩 쉬며 찍었던 사진. 언제 찍었는지 기억도 안나는 사진이 많다.

 

 그렇게 4시간을 갔을까.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사람들은 바로 쉬운 코스인 루미앙 동굴로 들어온 사람들이다. 그때서야 나도 비로소 긴장이 어느 정도 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서야 동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확실한 것은 자연은 신비롭다. 자연이 만든 예술작품이란 경이로울 뿐이다.

 

 그저 유명한 곳이니 하고 들어온 동굴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만큼 힘들었고, 아름다웠기 때문 아닐까?

 

 

 

 

밑의 사진은 자연이 만든 작품이다.

 

 

 

 

랜턴 불빛을 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렌턴 불빛만이 존재한 이곳, 어쩌면 지금 앞이 캄캄한 나도 이런 칠흑같은 어둠에서 의지하고 있는 렌턴은 무엇일까. 과연 나는 발버둥치며 줄을 잡고 있는가. 여러 생각마저 들기 시작했다.

 

생각은 뒤로하고, 억울한 감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개고생 하면서 왔는데 우리가 만난 사람들은 아주 편히 정말 걸어 들어온 것이다. 그건 억울하지 않다. 고생을 사서 했으니까. 정말 억울한 것은 그 사람들이 쓰고 있는 렌턴과 안전모이다. 저건 우리가 필요한 것 같은데 걸어서 15분 들어온 사람들이 안전모를 쓰고 동굴을 탐험한 척. 그게 억울하다. 더군다나 자랑하기 아주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인트 마져 있으니 사진만 본다면 나보다 그 사람들이 고생한 것처럼 보일듯 하다.

 

 

안전모를 쓰고 절벽을 오르는 사진. 아마 지금 저들이 찍은 사진은 ‘I’ve been Sagada. I climbed a cliff. It was really hard. Can you image it?’ 이란 멘트와 함께 페이스북에서 떠돌고 있을 것이다. 나도 억울해서 안전모라도 빌릴까 하다가 그냥 힘든 척 하며 한장

 

 

사실 이 사진 고생했다고 하며 남길려고 했으나, 정말 고생했을 때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알 것이라 생각한다.

 

 동굴 탐험을 끝내고 올라오니 이미 바깥도 어둠이 깔려있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셔틀도 다니지 않아 40분 거리인 마을까지 걸어가야 한다. 이미 긴장이 풀려버린 상태라 몸이 많이 지쳐 걷기도 힘든 상태다. 지금 가장 생각나는 것은 된장찌개. 왜 된장찌개가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나름 필리핀 생활에 많이 적응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지만 이럴 때는 어쩔 수 없는 한국사람인가보다. 힘들면 고향음식 생각 나는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이곳 사가다에는 김치 레스토랑과 레몬하우스 두 개의 한국 식당이 있다. 숙소에서 씻고 나와 된장찌개를 찾아 한국식당으로 향했다. 가까운 레몬하우스에는 된장찌개는 없다. 근데 짜장면이 있는 불편한 진실.

 

 두 번째 찾아간 김치 레스토랑. 여기가 클럽인듯이 껄렁껄렁한 필리핀 사람 두 명이 다가와 주문을 받는다. Bro어쩌고 하면서내가 너랑 언제 봤다고 Bro. 다행히도 이곳에는 된장찌개가 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심지어 닭도리탕 안동찜닭이 메뉴에 존재한다! 놀라울 따름이다. 된장찌개와 닭도리탕을 시키고는 사이드메뉴로 나온 계란오믈렛에 밥 한 공기를 뚝딱. 배가 많이 고프긴 했다. 정말 많이 고팠다. 그리고 오믈렛이랑 밥 한 공기 더 시키니 그냥 서비스로 갔다 준다. 껄렁껄렁하긴 해도 착한 사람이었네.

 된장찌개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닭도리탕의 맛은 그럴싸 했지만 된장찌개 맛은 좀 아니었다. 그래도 된장찌개는 된장찌개다. 먹으니 힘이 다시 난다.

 

8시밖에 안된 시간이지만 마을은 조용했다. 하늘에는 별이 쏟아질 듯이 많이 있다. 아마 호주에서 보고 처음 보는 광경인 듯 하다. 그리고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완벽한 북두칠성을 보았다. 별을 보며 맥주 한 병을 마시니 여기가 또 천국이었다. 긴팔을 입고도 추위에 떨며 맥주 한 병 마시며 별을 보는 모습. 필리핀에서 느낄 수 없는 이국적인 모습이다.

 

 다음 날, 아침에 둘 다 늦은 시간인 10시에 일어났다. 역시나 너무나 피곤했던 모양이다. 씻고 나서 체크 아웃 후 어제 가보지 못한 레몬하우스로 갔다.

 

한국식당이긴 하나 레몬파이가 유명한 외국인도 많이 찾는 곳이다.

 

 

레몬파이와 커피와 함께 브런치를 즐기고 있는 모습.

 

 

 

 레몬하우스를 끝으로 동후와의 사가다 여행은 끝이 났다. 아직 10시간이라는 기나긴 여정을 거쳐야 마닐라에 도착하긴 하지만.

 

7시에 출발한 버스는 새벽 5시가 넘어 마닐라에 도착했다. 그날은 그대로 하루 종일 침대와 한몸.

 

 화요일은 그야말로 자소서와 하루를 보냈다. 취업준비생으로서 포기할 수 없는 삼성의 공채가 떴기 때문이다. 처음 목표로 했던 삼성엔지니어링은 수학과가 지원이 안되는 관계로 결국 포기하고 삼성전자를 쓰는 것으로 마무리 하고 저녁엔 갈비살 부페로 갔다. 500페소에 갈비살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고기부페로 마닐라에 올 때마다 항상 찾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마트에서 사다먹어도 300g 정도 하는 가격으로 이곳에서는 마음껏 먹을 수 있으니.

 

 저녁을 먹고 이스트우드로 향했다. 마닐라에 있지만 마닐라가 아닌 것 같은 곳. 역시나 라이브바가 있는 곳으로 향해 맥주와 함께 음악을 즐긴다. 화요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아 많은 음악을 신청할 수 있었고 그 날 밴드는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듯 했다.

 

 수요일이다. 드디어 한국으로 떠나는 날. 하지만 가기 전에 할 일이 생겼다. 우연하게 앞에서 말했던 필리핀 관광청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마닐라에 있으니 연락하라는 내 메일에, 다시 연락이 왔고, 오늘 만나기로 한 것이다. 단순히 여행을 온 것인데 갑자기 비즈니스가 되어버렸다. 참으로 기대되는 만남이다. 앞으로 4개월에 가까운 시간 동안 함께 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니 말이다.

 약간은 후져 보이는 관공서가 있을까 싶은 건물로 들어갔다. 보안직원의 안내에 때라 4층으로 향했고, 드디어 나는 나와 함께 일하게 될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다행히도 모두들 따뜻하게 반겨주었고 농담도 주고받았다. 하지만 다시 한번 그들은 큰 오해를 하고 있는 듯 하다. 워낙 길바닥에서 배운 영어라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꽤 한다. 그걸 보고 나보고 영어를 잘한다고 칭찬을 하는 것이다.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눈다면 완전히 들통나는 영어실력인데 말이다.

 연락을 한 이유는 엑스포 때 입을 의상 사이즈 때문에 연락을 했다고 한다. 나는 필리핀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의상실에 가서 사이즈를 재는 행운(?)을 가지게 되었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드디어 계약서를 쓰게 되었다. 이것은 내 인생 처음으로 쓰게 되는 근로계약서였다. 뭔가 흥분된다. 호주에서도 많은 일을 했지만 근로계약서를 쓰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짧은 영어여도 뭐가 뭔지는 알기 때문에 처음 말했던 조건과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고 싸인을 했다. 편의점에서 체크카드 결재할 때나 하던 싸인이 드디어 의미 있는 일에 하게 된 것이다. 싸인을 하고 일주일 뒤에 한국을 방문하게 될 직원을 만나 부산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4일이지만 드디어 일이 시작되는 것이다. 걱정이 앞서기는 하지만 잘 해낼 수 있으리라 믿고 도전했고 그 일은 다행히도 잘 마무리 되었다.

 

 여행이 끝나고 나면 항상 꿈에서 깬 듯 하다. 사람이 꿈을 꾸려면 낮에 열심히 활동하고 잠자리에 들어야 꿈을 꿀 수 있다. 꿈을 꾸기 위한 잠자리를 필리핀 가는 비행기라고 하면 난 또 잠자리를 위해 열심히 활동해야 잠자리에 들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10일 정도 후면은 엑스포를 위해 여수에 내려가게 된다. 낮에 엑스포라는 활동을 열심히 한 후 다시 잠자리에 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