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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이의 필리핀 연수기(2010년 7월17일~8월20)

K히메 2010. 9. 17. 09:40

7 17, 오전 2시 목포발 인천공항행 버스에 몸을 싣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인천공항이길 바라면서…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몸은 자고 싶지만 머릿속은 필리핀 생각뿐이다. 2년 반만의 필리핀. 이번에는 그곳에서 어떤 일이 있을지 상상을 하면서 버스가 출발한지 2시간만에 겨후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버스는 영종대교를 건너고 있었다. 공항에 거의 도착한 것이다. 인천대교 개통으로 인천대교를 건널 줄 알았더니 여전히 영종대교를 이용한다. 나는 공항이 참 좋다. 출국하기 위해서든 마중을 나가서든 공항은 언제나 나에게 활기를 준다. 아마도 출국하는 나에게는 외국에 대한 설레임을, 마중을 나가서는 만남에 대한 설레임을 주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티켓팅을 하고나니 30분 정도 시간이 남는다. 맥도날드에서 머핀과 커피로 아침을 떼우고 출국장으로 향했다. 무사통과. 그리고 내 눈앞에 펼쳐지는 면세점들. 사실 이곳은 나랑 관련이 없는 곳인듯 하다. 출국을 위해 이곳을 찾은 것이 다섯번째이지만 이곳에서 면세품이라고 사본 것은 담배, 로션 두가지 뿐이였다. 역시 면세점이 싸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고가의 물품을 파는 곳이기에 똑같은 비싼 곳일 뿐이다. 비행기에 타기 전 몇몇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비행기에 탔다. 사실 원래 예약한 비행기는 저녁 비행기였지만, 출국 이틀 전에 갑작스레 아침 비행기가 자리가 생겨서 티켓을 바꿨다. 그때는 필리핀에서의 하루를 벌었다고 좋아했지만은 지금은 의문이다. 이 피곤한 몸으로 뭘 할 수 있겠냐는… 모르겠다 우선 타고 자자!

자리에 앉고 이륙을 기다렸지만 내 옆 두자리에 아무도 앉지 않는다. 올레!! 편하게 가는구나. 첫번째 필리핀행에서도 세자리를 차지하고 갔었는데 이번에도다. 역시 필리핀은 가는것부터 편한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비행기에 타자 마자 골아떨어졌다. 하지만 금새 깨어났다. 기내식때문이다. 항상 비행기에서 잠들어도 편하지 않는 것 같다. 옆에서 누가 잠깐만 돌아다녀도 계속 깬다. 아시아나항공 단거리 기내식은 맛도 없는데… 뭐 어쨌든 깼으니 먹자. 역시나 생각했던대로 소고기밥, 생선밥이다. 벌써 세번째 먹어보는 기내식이다. 사실 밥보다는 밥과 같이 주는 빵이 더 맛있다. 아쉬운대로 밥을 먹고 잠깐 티비시청도 하다 책도 읽다보니 착륙한다는 방송이 나온다. 버스타고 목포가는것보다 짧은 시간이다. 입국신고서를 작성하고 다시한번 마닐라에서 앙헬레스 가는 방법을 되뇌인다. 나의 첫번째 계획은 앙헬레스에 계시는 목사님댁을 방문하는 일이였는데, 아무도 픽업을 나오지 않기 때문에 혼자 가야한다. 기대 반 두려움 반이라는게 이런 것이구나.

안전하게 착륙을 한 후, 입국심사대로 향했다. 입국심사대에서 심사를 하는 녀석이 갑자기 말을 건다. 왜왔냐. 뭐할꺼냐. 얼마나 있을꺼냐… 등등 왜 나한테만 물어보는것인가. 처음에는 열심히 대답하다가 귀찮아졌다. 영어 모르는 척 하자. 그랬더니 이녀석 그냥 보내준다. 이걸꺼면 왜 물어본거니? 심심했니? 나와서 짐을 찾고 우선 담배 한대를 물었다. 마닐라의 공기가 느껴진다. 습하고 매쾌한 공기. 그다지 기분 좋은 공기는 아니다. 다시 이곳에 왔구나! 하지만 다시 왔다는 기쁨과 앙헬레스로 가야한다는 걱정이 교차하는 순간이였다.

마닐라공항에는 두 종류의 택시가 있다. 옐로우택시라고 불리우는 공항택시, 그리고 하얀색깔의 일반택시. 옐로우택시는 공항택시이기 때문에 기사들도 친절하고 한다. 하지만 일반택시는 거스름돈이 없다. 없는것이 아니라 안주려고 없다고 잡아뗀다는게 맞다. 내가 가야하는 파사이터미널까지는 옐로우택시로는 300페소정도, 일반택시로는 100~150페소 정도이지만 잔돈이 없는 나로서는 옐로우택시를 타야되겠다. 택시기사한테 500페소를 뜯길수는 없으니까.

마닐라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파사이터미널로 가는 한국인의 90% 이상은 앙헬레스로 간다. 택시기사 역시 이것을 잘 알고 있다. 나보고 묻는다. 앙헬레스 가냐고. 자기가 갈수 있다고. 물론 갈수야 있겠지. 내가 2500페소가 있다면은. 영어 못하는 사람들은 여기서 당한다고 한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은 120페소에 갈수 있는 앙헬레스에 20배가 넘는 가격으로 가게 되는것이다. 택시기사의 제안을 딱 잘라 거절한 후 파사이 터미널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약간 안심이 된다. 2년 전 필리핀에 있을 때 와봤던 곳이기 때문이다. 다우행 티켓을 끈었다. 앙헬레스로 가기 위해서는 다우 터미널로 가서 지프니나 트라이시클을 타야한다. 티켓을 끈고 난 후 잠시 기다리면서 물을 하나 샀다. 이녀석 40페소를 부른다. 여기서 물 한통에 1200? 내가 외국인인지 알고 올려부른것이다. 말도 안된다. 하지만 어쩌겠나. 힘없는 외국인이 그냥 부르는데로 사야지.

30여분쯤 후, 바기오행 버스가 들어온다. 다우에 가기 위해서 타야하는 버스이다. 다행히도 에어컨 버스이다. 에어컨이 없는 버스를 탄 적이 있었는데 지옥에 가까웠다. 덥고 땀냄새는 진동을 하고… 에어컨 버스인것에 감사하며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낑낑대며 올라탔다. 우리나라 같으면 짐칸에 넣겠지만 여기는 필리핀이다. 내 짐이 어디로 가버릴지 모르는. 자기 짐은 자기가 잘 챙겨야 된다.

타국에서 혼자 하는 여행이다보니 몸은 피곤해도 엄청난 긴장감이 몰려온다. 여기서 잠들다 잘못하면은 5시간 거리에 있는 바기오까지 가야되기 때문이다. 비좁은 자리에서 가방을 껴안고 주위를 잘 살피며 긴장감을 유지한 채로 버스를 타고 있었다. 이런것도 여행의 하나의 재미일까?

마닐라 파사이터미널에서 출발한 후 쿠바오터미널을 거친 후, 첫번째 서는 곳이 다우이다. 미리 보고 온 정보에서도 그렇게 말하고 있고, 내 기억속에도 첫번째가 맞다. 하지만 버스를 타고 1시간 반 남짓 간 후 첫번째 도착한 곳은 내 기억속에 있는 다우 터미널이 아니다. 도대체 이곳은 어디란 말인가? 다우터미널이 바뀐 것일까? 아니면 버스를 잘못 탔나? 아닌데 맞게 탔는데. 아니면 이곳에서 앙헬레스에 가야하는 것인가? 별의별 상상을 다 했다. 옆에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여기는 다우가 아닌 팜팡가이고 자기도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팜팡가라 하면은 사실 내가 아는 곳이다. 예전 앙헬레스에 살 때 몇 번 이곳의 쇼핑몰에도 와본 적이 있다. 하지만 다우터미널보다는 앙헬레스에서 더 먼 곳이다. 더 헤깔린다. 여기서 가야하는 것인지, 아님 더 가서 다우터미널이 나오길 바래야 하는 것인지. 한참 고민하고 있을 때, 옆에 아주머니께서 다른 사람에게 물어 말씀해주신다. 한번 더 가면은 다우 터미널이 나온다고. 다행이다. 15분여쯤 더 가니 내 기억속에 있는 다우터미널이 보인다. 안심이 된다.

버스에서 내리고 안도의 담배를 한모금 머금으니 여지없이 트라이시클 호객꾼이 와서 타라고 한다. 호객꾼에게서 타면 팁을 줘야하니 기사냐고 물어보았다. 기사란다. 아 속았다. 트라이시클에 도착하니 내 짐을 싣어주며 손을 내민다. 어쩔수 없이 10페소 하나를 주고 트라이시클을 타고 목사님 댁으로 향했다. 몇 년만의 트라이시클인지. 마음의 안정도 찾았고 슬슬 재밌어지기 시작한다. 짐만 아니였다면 지프니를 타고 가는것도 재밌을테인데.

목사님 댁을 도착하고 큰 목소리로 사모님을 불렀다. 사모님께서 나오신다. 엄청나게 반겨주신다. 필리핀에서 뵌 후 한국에서나 뵐 줄 알았던 목사님과 사모님을 뵈니 나 역시 엄청나게 반갑다. 왜 이렇게 살이 빠졌냐며 보기 좋다고 말씀하시는 사모님. 사실 호주 다녀온 이후에 많이 쪘는데도 말이다. 목사님과 사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저녁을 먹었다. 마침 목사님과 사모님께서도 월요일에 마닐라에 가실 일이 있으시다며 마닐라까지 태워다 주신다고 하신다. 마닐라까지 가는 차비보단 그 좁은 차에 끼어서 가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기쁘다. 저녁을 먹고 나니 긴장이 풀려서인지 잠이 몰려온다. 자자.

다음날 아침, 사모님께서 아침 먹으라고 깨우시는 바람에 일어났다. 아침 먹고 또 잤다. 어제 하루의 피로가 엄청난가 보다. 점심을 먹고 빌리지를 한바퀴 돌았다. 예전에 자주 가던 깐틴, 꼬치구이를 팔던 곳도 가보았다. 2년이 지나도 주인은 그대로다. 난 이들을 기억하지만 이들은 날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겠지.

저녁이 되어 발리바고에 있는 바로 향했다. 역시 내가 예전에 자주 가던 곳들이다. 필리핀의 바에는 항상 라이브 음악이 있다. 한국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라이브 음악. 이것이 나를 필리핀의 바로 발걸음을 향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곳 역시 한국인들이 많아 완전 이국적인 냄새라든지 그런 것을 찾기는 약간 힘들지만 그래도 좋다. 홀로 맥주 한병을 마시며 음악을 즐긴다.

집으로 오는 길, 이곳은 변한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한때 이곳으로 유학을 생각한적도 있었다. 변하지 않은 이 모습을 보면서 만일 내가 이곳으로 왔었다면 나도 이곳과 같이 그래도 머물러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지난 2년 반의 시간동안 힘든 학기도 보냈고 호주에서 10개월을 보내봤고 다시 마음잡고 복학해서 1년동안 학교도 다니고. 난 참 많은 일이 있었는데 이곳은 아무일도 없었구나 라는 생각이 머리속에 스친다.

일요일이다. 아침에 일어나 씻고 교회로 갈 준비를 한다. 가는길에 사모님께서 지금까지 교회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신다. 필리핀 목사님이 바뀌셨고, 지금은 유치원도 하고, 예전에 비해서 교회도 많이 부흥했다고 한다고 한다. 교회에 도착해보니 예전보다 신도 수가 많아졌다는 느낌이다. 그 동안 목사님께서 복음을 위해 많이 힘쓰셨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예배를 마친 후, 점심을 먹었다. 예전엔 하숙생도 있고 하셔서 집에서 밥을 준비해오셨는데 지금은 하숙생도 없고 해서 그냥 필리핀 애들이 한 음식을 먹는다고 하신다. 나도 필리핀 음식을 먹게 되었는데, 입맞에 맞지 않는다. 아니 못먹겠다. 한국이였으면 안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음식이 이들과 마음의 벽을 허무는데 최고 아닌가. 결국엔 약간의 필리핀음식과 함께 밥을 먹었다 점심을 먹으며 사모님께서 나를 필리핀 사람들에게 소개시켜주신다. 지금 소개시켜주는 사람들 중에서 예전에 알던 사람도 있는데 그들은 날 기억 못한다. 슬프다. 여행자라는 것이 이런 것이란 생각이 든다. 심지어 나는 세달 동안 이곳에 있었고 난 그들을 기억하는데 그들은 날 기억 못한다. 여행자는 얼마나 더할까? 여행자는 여행지에서 만난 이들을 기억하겠지만 그들은 시간이 지나면 여행자를 잊겠지?

예배를 마친 후, 심카드를 사러 간다. 예전 같았으면은 여기서 핸드폰을 사야하지만, 지금 내 핸드폰은 해킹이라는 것을 통하여 여기 심카드만 사서 꼽으면은 통화가 가능하다. 이게 아니였다면 한달동안 있는데 사자니 돈아깝고, 안사자니 심심했을텐데 말이다. 심카드를 산 후 재원이형에게 잘 도착했다며 내일 계획대로 일로일로로 간다고 전화를 했다.

 월요일 아침부터 집이 분주해졌다. 나는 일로일로로 떠나는 날이라 다시 짐을 싸느라, 목사님과 사모님께서도 마닐라에 가실 준비로 바쁘다. 편하게 갈 줄만 알았던 마닐라, 하지만 이게 왠걸. 에어컨이 고장이란다. 이곳은 공기도 좋지 않아서 고속도로에서 문을 열고 갈수도 없다. 차는 찜통이였다. 마닐라에 도착하기도 전에 상의는 땀으로 젖어있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문제는 마닐라 여행을 다시해야된다는 것이다. 버스를 타면 공항에서 가까운 파사이터미널로 가서 택시를 타면 되지만, 목사님께서는 퀘존으로 가기 때문에 그곳에서 택시를 탄다면 500페소 이상의 돈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다고 이곳에 공항으로 가는 철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버스가 잘 되 있어서 공항으로 가기 편한 것도 아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려주시는 곳에 전철이 있다는 것이다. 거기서 역을 알려주시며 그 역이 공항에서 제일 가까우니 그곳에서 택시를 타라고 알려주신다.

 마닐라에 도착해서 목사님과 사모님께 다음에 다시 뵙기를 기약하며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근처 역으로 가서 알려주신 곳으로 가는 티켓을 사고 전철에 올랐다. 세번째 마닐라인데 전철을 타보긴 처음이다. 처음인데다가 날 더 긴장시킨 것은 타고나니 안내방송이 없다. 결국 문 옆에 서서 역마다 밖을 내다보고 역을 찾는 방법뿐이였다. 혼자 여행은 긴장의 연속이다.

 무사히 내려야 할 곳에서 내리고 택시를 타고 필리핀 국내선인 제 3터미널로 향했다. 내리자마자어 이곳은 깨끗하네?’ 라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지어진지 얼마 안된 곳이다. 다시 티켓팅을 하고, 비행기를 타는 곳으로 향했다. 필리핀 공항의 특징 중 하나는 공항세가 티켓값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국내선 200페소, 국제선 700페소인데 우리나라 사람으로서는 익숙치 않다.

 마닐라에서 일로일로까지 걸리는 시간은 1시간정도. 비행기에 타자 마자 나도 모르게 그냥 곯아떨어졌다.

 일로일로공항을 나오니 재원이 형이 기다리고 있다. 10개월 만인듯 하다. 이곳에서 벤을 타고 다시 들어가야 된다고 한다. 벤을 타고 1시간이 좀 안되게 이동을 했다.

 이곳이 앙헬레스와 다른 큰 특징은 이곳은 택시가 있다는 것이다. 일로일로에서 네번째로 큰 도시라고 하더니 택시도 있다. 왠지 나 촌놈이 된 느낌이다. 택시가 신기해지다니.

 재원이 형 집은 일로일로 몰로라는 곳에 있는 싸우스빌이다. 입구 바로 앞에 보이는 집. 집 찾기는 쉬운 것 같다. 집에 도착해서 간단히 짐을 풀고 샤워를 한 후 저녁을 먹으로 나갔다. 택시를 이용해서 나갔는데, 거리상으로 따져보니 앙헬레스에서 트라이시클을 타고 80페소정도 나올 거리를 택시를 탔는데 50페소밖에 안나온 것이다. 여기가 앙헬레스보다는 물가가 싼가보구나. 재원이형이 가는 곳에 대해서 설명해주신다. 지금 가고 있는 곳은 스몰빌이라는 곳이고 이쪽이 큰 술집도 있고 술마시기도 안전한 곳이라고. 놀곳도 이곳밖에 없다고 한다. 그곳에서 저녁을 먹은 후. 다시 집에 들어왔다.

지금 이곳에는 몰로축제가 한창이라고 한다. 재원이 형과 몰로축제를 구경나가기로 했다. 축제라고는 하지만 오래 전 우리나라 시장통을 보는 듯 하다. 그리고 70% 이상이 도박을 위한 것들이다. 여러가지 게임이 있는데 그 중 색깔 맞추는 게임을 해보았다. 게임에 대하여 잠깐 설명을 하면 바닥에는 6가지 색깔의 칸이 여러 개 그려져 있고 위에서 세개의 탁구공을 떨어뜨린다. 배팅은 각 사이드에 있는 그림에 돈을 올려두면 되는 것이다. 배당은 하나가 들어갈때마다 배로 주는 것이다. 흰색 칸 위에 10페소짜리 동전을 올려두고 탁구공이 흰색으로 들어가기만을 바라고 있다. 안들어간다. 그렇게 100페소 정도 날린 것 같다. 역시 나랑 도박은 아니다. 잠시 그곳을 둘려본 후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나갔다 스몰빌로. 이번엔 재원이 형이 자주 가신다는 바에 갔다. MO2 ice라고 써진 이 바. 들어가보니 클럽에 가까운 내 또래 애들이 좋아할 장소이지 재원이 형 나이의 사람들은 좋아할 분위기는 아니였다. 이 바가 일로일로에서는 가장 크다고 한다. 그리고 의외로 재원이형이 이 바의 매니저와 디제이와 친하다고 한다. 나이가 좀 있으셔셔 그냥 조용한 곳에서 한잔 할 줄 알았더니 이런 곳을 좋아하신단다. 재원이형 역시 나와 같이 라이브 음악을 즐기시는듯 하다.

 맥주 한병씩 손에 들고 내일부터 있을 수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신다. 대충은 알고 가서 걱정은 안되지만 기대되는 것은 어쩔수 없나보다. 어떤 선생일지, 나랑은 잘 맞을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집에 들어왔다.

 첫 수업이 있는 날이다. 기대된다. 첫 수업은 10시부터 시작했는데, 튜터의 이름은 Honey. 말이 많은 애다. 한번 말하기 시작하면은 삼천포로 빠질 정도로. 허니와 하는 수업은 문법과 글쓰기였는데 자기 자신도 대화하는데는 잘하지만 문법과 글쓰기에는 별로라고 한다. 그래도 가르치는걸 보니 잘 한다. 내가 말이 많지는 않은 성격이라 튜터가 말이 많은 점이 좋았다.

 점심을 먹고, 길을 나섰다. 두번째 수업은 재원이 형이 운영하는 학원에서 한다. 2시부터 시작하는 수업. 약간 늦었다. 튜터는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고, 도착하자마자 정신없이 수업을 시작한다. 튜터의 이름은 Shila. 원래 이름은 Shilamite인데 간단히 쉴라라고 부르라고 한다. 이쁘게 생겼다. 우선 이쁘게 생겨서 맘에 든다. 근데 애 잘 가르치기는 하는데 너무 빡빡하게 한다. 잡담 한마디도 안한다. 이 튜터와는 세시간씩 하기도 되어있는데 너무 빡빡하다보니 세번째 시간에는 약간 지친다.

 첫날 수업이 어찌 지나간지도 모르게 지나고 집에 도착하니 저녁을 먹을 시간이다. 앞으로 5주간 재원이 형이 차려주는 밥을 먹어야 하는데, 의외로 맛있다. 혼자 생활을 오래하셔서인지 음식도 잘 하신다.

 저녁을 먹은 후, 빌리지 안을 돌아보았다. 처음에 듣고 와서는 알고 있었지만 이 동네 확실히 부자동네다. 집들이 정말 으리으리하다. 그 동네에서 제일 안좋은 집이 재원이 형 집이다. 그래도 가장 안전하다고 한다. 빌리지 입구에 있다보니 항상 가드가 지켜볼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 빌리지와 앙헬레스의 빌리지와 약간 차이가 있었는데, 우선 규모부터 작았다. 그리고 앙헬레스의 빌리지 안에는 작은 깐틴이 여러군데 있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섭 디비션에서나 볼수 있는 모습이란다.

 수업 둘째날, 허니가 말한다. 자기는 7월밖에 가르칠수 없다고. 그럼 왜 시작했냐고 하고 싶었지만 얘기를 들어보니 누구의 잘못도 아니였다. 재원이 형은 허니한테 7월에 한달동안 학생 하나 가르칠수 있냐고 물어봤다는 것이다고, 재원이형 또한 가능하다고 했다고 하기에 고용했다고 하니 누구의 잘못을 탓할수도 없는것이다. 2주 정도면은 친해지면 떠나는 것인데 아쉽다.

 오후 쉴라와의 시간. 얘 또 잡담도 안하고 가르친다. 이러다 질리겠다. 거기에다가 숙제도 어마어마하게 내준다. 공부하러 온거긴 하지만 죽겠다 진짜. 애는 재원이형한테 교육을 제대로 받은 모양이다. 수업 끝나고 집에와서 밥먹고 숙제를 하고나니 9시가 넘어간다. 이시간에 뭘 하랴.

 사실 수업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나 자신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였다. 영어가 힘든게 아니였다. 어떤 색, 어떤 숫자, 어떤 캐릭터를 좋아하냐고 물어보는데 대답을 못했다. 나도 내 자신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미래의 꿈이 뭐냐고 물어보았을 때, 정말 나 자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꿈이 없어진지 오래되어버린 나. 단지 남들 하듯이 졸업하고 남들 다 하듯이 취직해야되겠다고 생각해버린지 오래되어버린 것 같다. 졸업하고 비즈니스맨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내가 챙피해진다. 누가 그들을 보면 웃을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꿈이 있었고 자기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확실히 안다. 어쩌면 이것들이 5주라는 시간동안에 배우는 영어보다 더 값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낮엔 공부 저녁엔 숙제를 하면서 한주가 지나갔다. 사실 토요일날 월요일날 하지 못한  수업을 보강하기로 했었는데, 내가 와서 물갈이를 하는 관계로 수업은 하지 못하고 토요일 일요일 하루종일 누워만 있었다. 내가 물갈이를 좀 심하게 하는 편이라 나가지를 못한다. 일요일 저녁 겨후 진정된 속을 이끌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재원이 형 친구 와이프되시는 분이 딸과 함께 여기 일로일로에 계시는데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한 것이였다. 아이 이름은 하수인데, 9살정도 되고 영어공부 시키려고 싱가폴에 있다가 올해 한국의 국제학교에 입학한다고 한다. 나에게는 약간 어색한 자리였지만 다행히도 친절하신 분이였고 또 하수어머니께서 호주에 관심이 있으셔서 내가 아는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색함은 금방 사라졌다. 일로일로에 있는 동안 그분들과 서너번정도 이런 자리를 가진 듯 하다.

 그렇게 첫주가 지나가고 이번주에는 또 새로운 만남이 있다. 화요일까지 허니가 하기로 하고 수요일부터는 새로운 튜터가 오기로 한 것이다. 새 튜터의 이름은 Kate. 가르치는것을 보니 튜터 경험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나중에 물어보니 역시나 내가 첫 학생이란다. 가르치는게 약간 어색하지만 그래도 나름 준비도 많이 해온다. 원래 문법과 글쓰기라는 것이 따분하긴 하지만 처음 가르치는 얘이다보니 더 지루한듯하다. 그래도 어쩌겠나 지금 튜터를 바꿔봤자 3주밖에 남지 않고 다시 친해지고 하다보면 끝나버리니 그냥 가르치다보면 나아지겠지 하면서 수업을 들었다.

 여전히 쉴라는 빡빡하게 가르친다 숙제도 많이내주고. 농담도 안받아준다. 빡세게 가르치면 좋은거 아니냐겠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지 얘는 너무 심하다. 그래도 그나마 숙제하고 하는데는 어느정도 적응이 된 것 같다.

 화요일 저녁 보라카이에 가기 위한 사전 미팅으로 재원이형이 관리해주는 어학원을 찾아갔다. 대저택을 빌려서 하는 어학원인데 재원이 형이 다니는 교회 집사님께서 운영하신다고 하신다. 그곳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보라카이 가는데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첫 느낌은 다들 좋으신분 같다. 다만 가는 애들이 중학생 고등학생들이라 정말 보라카이 갔다만 오는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된다.

 수요일에는 필리핀에서 가장 많이 퍼져있는 쇼핑몰인 SM에 갔다. 이곳에는 총 네군데의 쇼핑몰이 있는데 그중 두군데는 SM, 다른 두군데는 로빈슨이라는 곳이다. 그 중 가장 큰 쇼핑몰인 SM으로 향했다. 나온 김에 운동을 하기 위해서 신발을 하나 구입하기로 했다. 그런데 좀 괜찮은 신발들은 한국보다 더 비싸다. 역시 필리핀은 싼 동네가 아니다. 단지 생활 수준이 낮을 뿐이지. 한시간 남짓 돌아다니다 보니 괜찮은 가격대의 런닝화를 찾을수 있었다. 런닝화를 구입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목요일 보라카이로 떠났다.

 보라카이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토요일 밤 다시 일로일로로 돌아왔다. 보라카이에서 있는 동안 같이 갔던 아이들과 집사님들과도 많이 친해진듯 하다. 가끔씩 집으로 초대하셔서 밥도 먹었다. 아이들도 처음에는 불편해 했지만은 나중에는 삼촌이라고 하면서 약간은 친해진 듯 하다.

 보라카이에서 다녀 온 후 첫번째 수업시간. 이상하다. 애들이 더 빡세게 가르친다. 내가 보라카이에 가있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애들이 더 열심히 하는거지? 그래도 이번 주에는 쉴라와는 많이 친해졌다. 가끔씩 문자도 주고 받기도 하고. 하지만 아직 케이트와는 어색하다.

 운동화를 산 후 수업이 끝나고 한시간에서 한시간 반 정도 집 근처 강가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빨리걷기로 1.1km되는 구간을 왕복했다. 역시 더운 나라여서인지 땀이 금방난다. 그렇게 걷다가 집에 들어오면은 옷은 땀에 흠뻑 젖어있다. 이곳에는 자전거와 보드로 묘기하는 사람들도 있고, 런닝을 하는 사람들, 강가 옆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 필리핀 사람들만 있는 곳에서 나 혼자 걸으니 정말 이곳은 외국이였다. 사실 이 곳이 아름다운 곳도 아니고, 재밌는 것이 있는 곳도 아니다. 하지만 외국이라는 이유 하나가 나를 그곳에서 걷게 하는 원동력이였다.

 이곳의 풍경중에서 하나 재미있는 모습이 있는데, 이곳은 내가 지금 지내고 있는 빌리지와 먼 거리가 아니다. 그래서 빌리지가 보이는데 빌리지 앞으로 수상가옥들이 떠있다. 이 수상가옥들 물론 빈민가이다. 이곳에서 지켜보면은 필리핀의 실상이 그대로 보인다. 빈민가 뒤의 호화 주택들. 부와 빈이 공존하는 곳.

 이곳에서의 나의 일상은 이렇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먹고 수업, 그리고 점심먹고 수업, 저녁먹고 운동, 그리고 숙제, 가끔 스몰빌에서의 맥주 한잔. 이것이 나의 평일 일상이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일상은 한국에서와는 다른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는 듯 하다. 한국에서는 그저 게으르기만 한 내가 이곳에서는 활기차게 움직이려고 하는 것이다. 5주라는 한정된 시간이 그렇게 만든 것일 까? 아니면은 상대적으로 내가 부지런해 보이는 것일까? 그리고 필리핀이라는 곳이 주는 마음의 안정감. 이곳 보다는 한국이 놀기도 좋고 공부하기도 좋은 환경이다. 하지만 무엇을 하든 불편한 한국과는 달리 이곳은 나에게 안정감을 준다. 허리도 제대로 못피고 앉아있어야 하는 지프니, 타라고 손짓하는 지프니 기사, 항상 막히는 길, 거리의 노점상들, 호객꾼들, 손을 벌리고 따리오는 아이들… 가끔씩은 귀찮지만 내 눈에는 항상 재미있는 모습이다. 그들의 삶과 내 성격이 맞는 것인가? 필리핀이 주는 이것들을 어떻게 말로 표현을 못하겠다.

 주말에는 재원이 형과 필리핀식 볼링을 치러 간다. 재미있는 것은 이곳은 모든 것이 수작업이다. 핀을 세우는 것, 다시 공을 굴려주는 것. 다 수작업이다. 이곳에서 한게임은 13페소. 뒤에서 핀을 세워주는 사람이 받는 돈은 한게임에 6페소란다. 원화로 바꾸면은 180. 이곳의 생활수준을 잘 말해준다.

 벌써 4주차이다. 안갈것만 같은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이제 케이트와도 많이 친해졌다. 잠깐 튜터들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쉴라는 이곳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곳에서 산다고 한다. 매일 아침 그 먼 거리를 지프니를 타고 출근하는 것이다. 원래 직업은 간호사인데 필리핀에서는 간호사가 넘쳐나 발령받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튜터를 하고 있다. 벚꽃을 좋아하는 쉴라. 그리고 자기가 미쳤다고 말한다. 가끔 비오는날 비맞으며 뛰어다닌다고 한다. 남자친구는 있는데 스킨쉽을 안한다고 한다. 3년 만나는 동안 손잡은 횟수를 손에 꼽을수 있다고 하니 말 다했다. 쉴라는 이쁘기도 하지만 성격이 참 좋다. 처음에는 빡빡한줄만 알았지만 알고보니 인간적인 면도 많고 특히 내가 기분이 좋지 않은 날 이 아이와 수업을 하고 나면은 기분이 좋아진다. 근데 자꾸 나에게 필리핀 음식인 발롯을 권한다. 난 싫은데 말이다. 남자친구가 없었고 내가 필리핀에 오래 머물렀다면은 아마 작업을 걸지 않았나 생각한다. 케이트 역시 쉴라와 마찬가지의 실직 상황에 있다. 한국 아이돌을 좋아하는 케이트. 2pm FT island를 좋아한다고 한다. 심지어 FT island의 콘서트도 다녀온적이 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아이는 정전을 몰고 다닌다. 내가 필리핀에서 경험한 정전중 케이트와 있었던 때가 70%는 넘는듯 하다. 신기한 것은 이 아이가 집을 나가면은 5분있다가 다시 불이 들어오는 것이다. 이것 때문에 여러 번 케이트를 놀릴 수 있었다.

 4주째가 되서야 처음으로 튜터들과 점심을 같이 먹었다. 사실 계속 저녁에 나가서 한잔 하자고 꼬셨지만 애들이 안한단다. 내가 싫은건가? 여튼 결국 핑계를 만들어냈다. 내 친구가 자꾸 필리핀에서 악어 이빨을 구해오라고 하는데, 튜터들에게 물어보니 악어 이빨은 없고 뱀뼈다귀는 판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튜터들에게 사는데 도와달라고 부탁을 해서 오후 수업시간 전에 나가서 뱀뼈따귀로 된 팔찌를 사고 점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아 밥 한번 사주기도 힘들다.

 이번 필리핀 행도 벌써 마지막 주이다. 수요일에 마지막으로 테스트를 하기로 해서 테스트 준비하느라 바쁘다. 그래도 마지막 시험이니 잘 봐야 할테인데 걱정이 된다.

화요일, 한국에서 재원이 형 친구분이 오셨다. 같이 저녁을 먹게 되었는데 무뚝뚝하신 분이지만 또 얘기하실때는 재미있으신 분이다. 인도네시아에 오래 계셨던 듯 한데, 인도네시아 이야기 하시는 것을 좋아하신다. 나 역시 다른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었다.

수요일날 테스트를 무사히 치르고 운동을 나갔다. 이제 이곳도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나를 슬프게 만든다. 유난히 오늘따라 노을이 붉게 타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내가 본 노을중에서 최고의 광경이였다. 아마 저 노을은 매일 운동하던 이곳에서의 마지막 추억이 될 듯 하다.

 운동 후 SM에 들렀다. 지금까지 고생해준 튜터들에게 선물을 사주기 위해서이다. 처음에는 간단히 손수건 정도를 생각하고 왔는데, 이곳 은제품이 싸다. 생각치도 못한 은으로 된 장신구 가격에 단번에 샀다. 케이트의 선물은 팔찌와 반지, 쉴라의 선물은 목걸이와 귀걸이를 골랐다. 사실 가격은 쉴라의 선물이 약간 더 비쌌는데 내가 쉴라를 더 좋아했기 때문일 것이다.

 목요일이다. 이제는 하루하루가 정말 아쉽다. 수업시간에 간단히 어제의 테스트에 대한 리뷰를 하고 선물을 줬다. 그리고 마지막 작별파티를 위해 저녁에 만나기로 했다. 점심때는 작게나마 케익 하나 사서 지금까지 잘해주신 권사님 댁으로 가서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저녁이다.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있는데 재원이형과 튜터들이 들어온다. 마지막 가기 전날 드디어 튜터들과 술 한잔 기울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자리엔 보라카이에 같이 갔던 형님 한분이 동석하셨다. 어학원 운영하시는 권사님의 동생분인데 한국에서 직장에 다니시다가 영어 공부를 위해서 이곳에 와계시는 분이다. 이날 술자리에서 특별한 일은 없었다. 다만 마지막이나마 이들과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좋을 뿐이였다. 특별한 일이 있었다면 튜터들이 처음으로 소주를 마시고, 나는 처음으로 발롯을 먹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암묵적인 거래가 아니였나 생각된다. 헤어지기전 튜터들이 나에게 편지를 한통씩 준다. 잘 가라는 편지이겠지. 5주라는 기간동안 정도 많이 들었는데 이제는 못볼거라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슬퍼진다. 쉴라가 편지를 꼭 8시가 되어서 읽어보라고 한다. 자신의 행운의 숫자란다. 케이트의 편지 역시 8시에 읽어보기로 하고 챙겨두었다.

 술자리가 끝나고 튜터들을 바래다 주니 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마닐라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집에서 5시에는 나서야 한다. 시간이 애매하다. 그런데 형님께서 한잔 더 할 생각 없냐고 물어보신다. 차라리 자지 않고 공항에 가는게 더 안전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형님 집으로 향했다.

 형님께서는 아껴두신 소주팩과 참치회를 꺼내주신다. 그래도 그동안 정들었는데 이정도는 해줘야되지 않겠냐며 말씀하시는데 정말 고맙다. 여기서 알게 된지 고작 3주의 시간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생각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형님께서는 자기가 직장에 다니면서 영어에 대하여 느낀점 등을 말씀해주신다. 아직 와닫지는 않는 얘기지만 언젠가는 그 형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지 하고 느낄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형님께서는 전화번호를 주시면서 자기가 10월쯤 들어가니 그때 연락 한번 하라고 하셨다. 10월이 되면 꼭 연락 한번 드려야 되겠다. 이렇게 세명이서 술잔을 기울이며 필리핀에서의 마지막 밤이 지나가고 있다.

 세시쯤 집으로 돌아온 후, 샤워를 하고 짐을 챙겼다. 그래도 시간이 남는다. 그동안 튜터들과 계속 문자를 했는데, 애들도 아직 안잔다. 네시가 넘어서니 문자가 없어졌다. 아마 이제 자나보다.

 다섯시가 되어서 공항으로 출발했다. 아직 동도 트지 않은 시간. 피곤하지만 가야된다. 아니 가기 싫지만 가야되는 시간이다. 아쉽다. 가기 싫다. 좀 더 머물고 싶다.

 공항에 도착한 후, 재원이 형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나는 공항 안으로 향했다. 공항 안은 티켓을 가진 사람만 들어갈수가 있어서 밖에서 작별인사를 해야한다. 비행기 시간은 6 30분이였는데 비행기를 타고 튜터들에게 문자를 하니 일어나있다. 사실 쉴라는 오늘 수두 백신을 맞기로 한 날이다. 집이 멀기 때문에 밤에 함께 하게 되면은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움직여야 하기에 어제 함께 할지 고민을 많이 했었다. 그런 쉴라를 데려가기 위해 난 짧지만 노래부르며 춤까지 췄었다.

 마닐라 제 3공항에 도착했다. 아시아나 항공을 타기 위해서는 1공항으로 가야하는데 각 공항을 이어주는 셔틀이 있다. 표지판을 확인하고 셔틀버스에 탔다. 혹시나 해서 옆사람에게 1공항으로 가는 셔틀이냐고 물어보니 아니란다. 분명 표지판은 맞았는데 가는게 아니란다. 큰일날 뻔 했다. 아마 물어보지 않았다면은 마닐라 어딘가에 내려서 헤메고 있었을 것이다.

 공항에 도착하니 8시가 넘었다. 공항에서 튜터들의 편지를 읽었다. 두 통의 편지에는 잘 가고 잘 지내라는 안부의 말이 있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쉴라의 편지에는 숙제가 있었다. 가는 날까지 숙제라니. 그 숙제는 한국에 가면은 여자친구를 만들라는 것이였다. 예전 수업할 때 금연에 관련된 얘기가 나온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여자친구 생기면 끊는다고 장난스럽게 말했었는데 그것을 기억하고 쓴 것이다. 그걸 기억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괜히 입가에 미소가 생긴다. 나도 선물보다는 편지를 써줄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비행기는 12 30분에 출발하는데 지금은 8 30분이다. 네시간동안 뭘 하지? 아무리 둘러봐도 이 공항은 할게 없다. 우선 목사님께 마지막으로 전화를 드렸다. 그나마 이 시간동안 튜터들이랑 문자를 할 수 있어서 덜 심심하다. 이마저 없었다면은 심심해 죽었을 것이다.

잠시 남은 시간동안 필리핀에서의 추억을 되뇌였다. 아무래도 처음 혼자 앙헬레스 여행 한 것과 보라카이가 가장 기억에 남는 듯 하다.

출국심사대를 통과하고 면세점으로 갔다. 지금 남은돈이 1500페소 정도 되어서 면세점에서 살 것이 있나 살펴보기로 했다. 하지만 이곳 면세점. 완전 사기다. 면세점이라는 곳이 필리핀 안의 마켓들보다 훨씬 비싼 것이다. 남은 돈 다 쓰고 가려고 해도 돈아까워서 안쓰고 갈것만 같은 면세점이다. 이곳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곳이 2층에 있는 까페이다. 이곳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한가지를 시켜야 한다. . 여기도 사기다. 가장 싼 것이 100페소짜리 물 한병이였다. 담배하나 피우기 위해서 100페소를 주고 물을 사야 된다니…

이제는 필리핀을 떠나야 할 시간이다. 마지막으로 튜터들에게 직접 인사를 하고 싶어서 전화를했다. 전화를 한 후 마지막으로 계속 연락을 주고받자고 튜터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비행기에 올라탔다. 이제 폰으로 문자를 하는것도 마지막이다. 아마 잘가라는 문자만 수십번 오고간듯 하다.

비행기를 타고 있지만 내리고 싶다. 몸은 비행기에 있지만 마음은 일로일로에 있는 것 같다. 이번에 가면 언제 다시 이곳에 와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