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사건 위령제에 다녀와서
4월25일 제주 4.3사건 위령제가 오사카 코리아타운에 있는 절에서 열렸다.
오사카는 제주에서 오신 분들이 많이 살고 있다.
일본이 1930년대 노동력이 부족했을 때 제주와 오사카 간 연락선을 운행한 것이 제주사람들이
오사카에 많이 이주하게된 요인이라고 한다.
제주에는 특별한 산업이 없었으니 막일을 하려고 많이 건너왔다고 한다.
1948년 4.3사태가 일어났을 때 오사카에 연고가 있는 사람들이 많이 밀항해 왔다고 한다.
그리고 4.3사태가 정부로부터 인정받기 전까지는 4.3사태에 관련되어 일본으로 오게되었다는 것을
숨기고 살았었다.
노무현 정부에 4.3사태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되고 나서 오사카에서도 4.3사태 연구가 활성화되고
연구회를 중심으로 4.3사태에 관심있는 분들, 그리고 제주분들이 모여서 절에서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코리아타운에는 한국 것이라면 없는 게 없다.
한국 절도 있고 교회도 있고......
친한 선생들이 위령제를 주최 하기에 참석하기로 하였다.
박사과정 때 지도교수가 재일교포인 관계로 자연히 재일교포 연구자들과의 교제가 넓어졌다.
일본사람들은 일본사람들만의 특색이 한국사람들은 한국사람만의 특색이 있고 재일교포는 재일교포들 만의
특색이 있다.
그들은 정말로 잘 싸운다.
그리고 그들은 정말로 잘 뭉친다.
묘한 동지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재일교포들은 한국사람도 아니고 일본사람도 아닌 제 3국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나처럼 일본에 장기 체류한 사람들은 또 그 사람들만의 특색이 있다.
그 특색 때문에 한국에 가면 일본화 되었다는 말을 듣게 되고
일본에서는 전형적인 한국사람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있다.
재일교포와는 또 다른 특색이다.
제 4국 사람이라고 해야하나???
일본사람과도 재일교포와도 한국사람과도 뭔가 다른 초소수민족이 되어간다.
오후 3시에 절 2층에서 심포지엄이 있고, 심포지엄이라고 해도 1년동안 제주도에서 이루어진 4.3사태 관련 보고다. 심포지엄이 끝난 후 1층에서 위령제를 지냈다.
그리고 제주에서 20여분이 오셨는데 제주공항 근처에 있는 4.3사태 관련 사체발굴에 대해서 보고를 하고 있다 .
그날 리츠메이콴대학 선생 2명과 모처럼 가는 쯔루하시 코리아타운이라
거기서 점심을 한국요리로 먹기로 하고 쯔루하시역에서 12시30분에 약속을 만났다.
그리고 코리아타운에서 게장, 잡채, 떡볶이, 비빕밥등 아주 많이 많이 먹었다.
위령제를 지낸 절 이름이 생각이 안나네,,,,,가물가물,,,,,
아무튼 위령제가 끝나고,,,,,,,
작년부터 재일교포기업가 연구 프로젝트팀에 들어가 기업가들 인터뷰를 해 왔는데
그 중 한 분이 한라일보 회장을 역임한 분이다.
인터뷰한 인연이 있어 그 분과 위령제가 끝나고 같이 식사하기로 하였다.
그분은 어릴때 어머니는 안계시고 아버지가 일본에 계셔서
작은아버지와 어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4.3사태때 작은아버지와 어머니가 죽임을 당하셨다.
그분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고 무서워 동네사람들과 무조건 한라산으로 도망가서
6개월을 산속에서 지냈다고 한다.
그 뒤 일본으로 밀항을 하여 금융업으로 성공하셨고 제주도를 잊을 수 없어
제주도에 있는 학교, 단체등에 30여년 전부터 많은 기부를 하여 오셨다고 한다.
재일교포기업가연구에서 그 분을 인터뷰한것은 제주대학에 2007년 3억을 기부한 것이
계기가 되어 되었다.
저녁식사는 그 분과 그 분의 친척이라는 전 제주시장님,
그리고 제주 출신인 교토쇼세이대학 교수와 함께
제주 할머니가 경영하는 식당에서 갈치찜과 전복죽을 먹었다.
갈치에 알이 듬뿍배어 있고 일본에서는 처음 맛보는 갈치찜이었다.
아니 한국에서도 요즘에는 맛 볼 수 없는 그런 갈치찜이었다.
할머니 말로는 그날 낚시로 잡은 갈치라서 웬만한 손님에게는 안 내놓은다고 한다.
제주도 멸치젓이 나왔는데 그 또한 너무 맛있어서 나도 모르게 할머니 이 젓깔 좀 싸주세요!!!!!!
일본에서 그냥 싸주지는 않았을 테고 분명 식사대와 함께 계산을 해서 받았을 것이다.
어쨌든 황금연휴 집에서 밥을 먹을 때는 멸치젓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외롭지 않았다.
아~또 먹고 싶다!!!!!